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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 CEO@Biz] CEO24時 /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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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 매일경제 2002년 11월27일 오후 2:07

[매경 CEO@Biz] CEO24時 /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최근 한 달 간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의 행적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경쟁국의 감시망을 피해 "2010년 세계박람회" 여수 유치를 위한 마지막 득표활동을 펼치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의 잠행은 대통령선거로 골치 아픈 국내 상황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현대차 사람들은 단호히 말한다.

"지금 회장님은 현대차의 글로벌 경영과 세계박람회 유치' 두 가지만으로도 정신이 없습니다."

# 온고지신(溫故知新) #

정 회장이 2000년부터 세계박람회 유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자 처음에는 모두 의아해했다.

해양을 주제로 한 세계박람회와 육상교통 수단인 현대자동차간에 연관성을 찾기가 힘들었다.

궁금증은 지난해 그가 "현대의 법통을 잇겠다"고 선언하면서 풀려갔다.

그의 경영스타일은 선친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꼭 빼닮았다.

한 번 결정하면 우직할 정도로 밀어붙이는 불도저 같은 추진력이나충성심과 정직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것도 똑같다.

세계박람회 유치에 뛰어든 것도 선친에게 배운 경영수업에서 이유를설명한다.

"기업은 혼자만 잘 살아서는 안된다. 국가에 기여해야 참다운 기업이다. 나는 기업가에게 요구되는 시대적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70년대 중동에서 달러를 벌어오고 88년 올림픽을 유치한 후 마지막에는 소떼를 몰고 북한의 문을 연 선친의 기업가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다.

더구나 현대차는 전세계에 펼쳐진 수출망을 확보한 글로벌 기업으로성장했다.

세계적 행사를 유치하는 데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세계박람회 유치는 그가 글로벌시대의 새로운 기업가상을 제시하고자택한 길이다.

얼마 전 A국 총리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1시간여 면담을 하고 일어서는 순간 정 회장은 속내를 보였다.

"마지막으로 한국 지지를 약속해 주십시요." (정 회장)

"저희도 논의 과정이 필요하니 지금 당장은…." (A국 총리)

"나도 한국에 돌아가면 이번 순방 성과를 보고해야 합니다. 약속을받아내지 못한다면 이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소." (정 회장)

정 회장 특유의 황소고집이 발동한 것이다. 몇 마디 실랑이가 오갔다.

"내가 졌습니다. 역시 정치인과 기업인은 다르네요. 한국이 왜 정 회장을 유치위원장으로 뽑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소. 지지를 약속합니다." (A국 총리)

총리 방을 나오며 정 회장은 수행직원들에게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무조건 이익을 내야 하는 체질이야. 박람회 유치도 마찬가지야. 실패를 생각할 필요가 없어."

정 회장은 평소에도 "진정한 경영자는 사업에서 흑자를 내야 한다"며수익경영을 강조한다.

박람회 유치에도 정 회장은 자신의 경영방식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 단순함의 미학 #

정 회장은 직선적이다. 복잡한 걸 싫어한다.

임원들이 그에게 보고할 때 명심해야 할 것은 "쉬운 말로 핵심만"이다.

경영판단을 내릴 때도 마찬가지다. 모든 판단은 회사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정부가 금강산사업과 현대그룹을 지원하라고 그토록 압력을 가해도꿋꿋이 버틸 수 있었던 배경은 "주주와 회사에 이익이 되느냐"에 대한 판단 때문이었다.

한 번은 현대차 전 직원에게 특별보너스를 지급하는 것이 내부적으로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좋지 않은 선례가 된다" "다른 기업들 입장도 생각하자"며 온갖 이유로 반대하는 참모진에게 정 회장은 명쾌한 결론을 내렸다.

"노조가 한 달 파업하면 손해가 얼마인가. 종업원들이 최고 대접을받는다는 점을 보여줘라."

그가 박람회 유치를 위해 방문하면 공장건설 등 반대급부를 요구받기일쑤다.

그때마다 정 회장은 한 마디로 답한다.

"타당성을 검토해보겠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시원한 대답만으로도 만족해 한국 지지를 약속한 국가도 몇 곳 된다고 한다.

# 카리스마에 담긴 따뜻함 #

지난달 정 회장은 파리에서 유럽지역 딜러 대표 80여 명을 초청해 만찬을 했다.

박람회 유치를 위한 마지막 "선전"을 당부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외국 사람들을 불러놓고 저녁 메뉴의 절반은 한식으로 채웠다. 고추장'된장' 김치 등이 가득 차려졌다.

"저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뛸려면 우선 우리와 우리 문화를 알아야하지 않겠느냐"며 정 회장이 지시한 것이다.

그는 이런 식으로 자기 사람부터 만들고 본다.

다른 재벌그룹 총수와 달리 유인균 INI스틸 회장' 박정인 현대모비스회장 등 유난히 "평생동지"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반면 해사행위를 하거나 거짓보고가 들통나는 임원에겐 용서가 없다.

주력 계열사 사장도 주저없이 교체해버리는 매정한 총수다.

하지만 여름 휴가는 신입사원 수련회에서 젊은 친구들과 뒹굴며 보낸다.

해외출장 때 수행직원들에게 "많이 먹어야 힘낸다"며 아침식사를 챙겨주는 경영자다.

#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

그가 99년 현대차를 물려받을 때만 해도 주위에서는 걱정이 컸다.

미국 수출이 급신장하고 경영성과를 좋아졌어도 "환율 등 외부 조건덕분"이라며 "운이 좋은 경영자"라고 폄하기도 했다.

그러나 98년 순이익 적자를 냈던 현대차는 지난해 1조원을 넘는 순이익을 올렸고 올해 사상 최대 이익 경신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자동차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자동차산업공헌상"도 받았다.

얼마 전에는 세계적인 자동차품질평가 기관인 JD파워의 평가에서 뉴EF쏘나타가 중형차부문 2위' 싼타페가 SUV부문에서 3위를 차지했다.

품질 면에서도 세계 무대에서 인정을 받게 됐다.

5일 후면 또 하나의 도전이 결말을 맺는다. 2년 간 지구를 네 바퀴나도는 거리를 후회없이 뛰었다.

"한국의 최고경영자"라는 수식어는 이견이 있을지 몰라도 지금 그는"한국을 대표하는 경영자"임에는 틀림없다.

그만의 "성공비법"으로 일군 결실이 12월 3일 모나코에서 세계박람회여수 유치 발표로 이어지기를 기다려보자.


<임상균 기자 sky221@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