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실적현황
왜 다시 재벌개혁인가 ② 계열사간 부당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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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사 살리려다 알짜회사도 "골병"

온나라의 눈길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움직임에 쏠려있던 지난 8일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검찰청에 1통의 고발장이 접수됐다. 모두 8쪽으로 이뤄진 이 고발장은 최태원 에스케이(주) 회장' 손길승 에스케이그룹 회장 등이 특정경제가중처벌법을 어기고 배임 행위를 저질렀다며 엄벌에 처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돼있다.

재벌그룹의 최고위층이 검찰에 고발되는 지경에 이른 과정에는 복잡한 사연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역외펀드 투자' 옵션 계약' 이면 계약 등 어려운 용어가 등장하는 은밀한 거래가 수년에 걸쳐 이어져온 탓이다. 핵심만 추리면 부실 계열사 하나를 살리기 위해 멀쩡한 계열사들을 동원했다가 ‘동티’가 난 사례이다.

에스케이그룹 계열사 간 부당지원의 꼬리가 드러난 것은 지난해 10월. 에스케이글로벌의 해외 현지법인들은 당시 미국의 투자은행 제이피(JP)모건이 갖고 있던 에스케이증권 주식 2405만9천주를 미화 1억1799만달러(한화 약 1463억원)에 사들였다. 주당 평균 4.09달러(약 6080원)인데' 누가 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거래 당일(11일) 에스케이증권의 종가는 1535원이었기 때문이다.

에스케이글로벌 해외 현지법인들이 이런 엉터리 거래에 엮인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에스케이증권은 제이피모건의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했다가 원금 전액을 날린 것은 물론 제이피모건에 막대한 투자손실금까지 지급해야 할 처지에 빠졌다. 퇴출 위기에 몰린 것이다. 양쪽은 소송 끝에 에스케이증권이 제이피모건에 합의금을 지급하는 대신 제이피모건은 에스케이증권의 증자에 참여한다는 쪽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이 때 문제는 제이피모건이 증자에 참여하면서 취득하는 주식을 에스케이그룹이 일정 가격에 되사주기로 하는 옵션계약을 붙였고' 지난해 10월 그 옵션에 따라 주식을 산 것이다. 에스케이그룹은 옵션계약의 존재 자체를 쉬쉬 숨겨왔지만' 결국은 드러난 것이다.

계열사 간 부당지원 사례는 에스케이 그룹에 그치지 않는다. 삼성전자 등 삼성계열사들이 퇴출위기에 몰렸던 삼성자동차의 채권을 공동으로 분담하기로 한 예가 있으며' 중견그룹에서도 (주)두산' (주)신세계 등에서 부당지원 사례가 드러난 바 있다. 두산은 계열사인 두산건설(주)' 두산기업(주)에 자금을 대여하면서 계약서상 받도록 돼있는 약정 이자를 받지 않는 방법으로 자금을 지원해준 것으로 드러나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또 신세계는 이-마트 매장 일부를 임대하는 과정에서 계열인 (주)신세계푸드시스템에게는 임대료를 턱없이 싸게 매겨 역시 공정위로부터 처벌을 받은 바 있다.

대표적 예만 든 것일 뿐' 사실 공정위가 지난해 9월 국정감사 기간에 발표한 자료는 재벌그룹의 계열사 부당 지원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정위는 98년부터 모두 6차례에 걸쳐 실시한 부당내부거래 조사 결과 부당지원성 거래는 모두 28조1073억원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특히 삼성' 현대' 엘지' 에스케이' 대우 등 5대 재벌에 대한 3차례 조사에서만 모두 20조3155억원의 부당지원성 거래가 드러났다.

계열사 간 부당지원에 따른 폐해는 대략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난다. 이익 내는 회사가 적자 계열회사를 부당하게 지원함에 따라 흑자 회사의 주주들에게 손실을 끼치는 문제를 우선 들 수 있다. 주주의 자산인 계열사를 동원해 다른 계열사를 도와주는 것은 실상 불특정 다수 일반투자자들의 주머니를 털어내는 범죄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계열사에 대한 부당·편법 지원은 또 공정거래 질서를 흩트려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도 해악이 크다. 쓰러져야 할 재벌계열사가 그룹의 힘으로 살아나면' 그 계열사와 경쟁하는 멀쩡한 중소기업이 나가 떨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김선웅 변호사(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자체 경쟁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계열사로부터 판매망' 원료비' 자금 등을 지원받는 방식으로 생존하는 기업이 시장에 살아남게 되면 결국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