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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간다" 현대차의 체질개선,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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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그룹, 퍼스트무버 도약 위해 체질개선

모두가 이용 가능한 유니버셜 모빌리티 표방
선행기술원, 미래 바꿀 초기 단계 기술 연구
제로원, 초기 아이디어 연결해 스타트업 육성
세계 1위 수소車, 상용·고성능차도 주도권
2018년 9월 정의선 현대차그룹 당시 부회장은 수석부회장을 맡으며 그룹 경영 최일선에 나섰다. 5년이 흐른 지금, 국내외 경영환경이나 회사 안팎의 상황은 적잖이 바뀌었다. 수석부회장이 된 후 몇 달간의 벼락치기 공부를 마친 그가 이듬해 초 처음 주재한 시무식에서 내건 화두는 ‘게임체인저’였다. 기존과는 확연히 다른 시장이 펼쳐지고, 새로운 룰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체질 개선이 어떻게 진행 중인지 살펴봤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내비게이션을 만들 수 있을까?’ 때론 엉뚱한 아이디어가 세상을 한발짝 발전시킨다. 모두를 위한 평등한 이동권에 관한 고민은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덧대져 자율주행 휠체어로 이어졌다. 현대차그룹이 만든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 제로원을 거쳐 나온 성과물이다. 기존 전동 휠체어가 무거워 비행기에 실을 수 없는 점을 감안, 접이식 휠체어 바퀴마다 모터를 달아 무게도 줄였다. 장애를 가진 이도 바다 건너 여행을 하는 데 불편함이 적어야 한다는 개발진 의견을 반영했다고 한다.

외화 드라마 ‘전격 Z 작전’에 나온 인공지능 자동차 키트의 실사판도 마냥 먼 미래 얘기만은 아니다. 이 회사 선행기술원에서는 차량이 승객의 감정을 인식해 자동으로 반응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지금은 센서로 운전자의 동공 위치를 파악하거나 뇌파 같은 생체신호를 파악해 알림을 주는 수준이다. 이를 확장해 각종 생체신호는 물론 운전패턴이 미세하게 바뀌는 점을 감지해 어떤 감정 상태인지를 모니터링하고 그에 맞춰 차량 스스로 필요한 기능을 작동시키는 식이다.

장애인을 위한 자율주행 전동 휠체어 프로젝트에 참여한 현대차 직원들. UNDP와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의 주요 내용은 다큐멘터리 영화 'for Tomorrow'에 담겼다.
"추격자 아닌 선도자" 새 시도 독려하는 까닭은


100년 넘은 업력이나 앞선 기술을 가진 기업과 경쟁하며 시장에서 선전하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새로 개척하는 건 더욱 쉽지 않은 도전이다. 현대차그룹이 제로원을 운영하는 배경이나 선행기술원을 통해 이루려는 바도 게임체인저로서의 태도를 익히려는 목적이 크다. 내연기관차를 만들 때는 독일과 미국, 일본 메이커가 하던 방식을 잘 따라 하거나 한층 가다듬는 식으로 대처하면 됐다. 전동화·자율주행으로 대표되는 미래 모빌리티 시장에서도 같은 식으로 할 것인가.

정 회장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확실한 주도권을 쥔 채 치고 나간 곳이 없는 터라,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에 도전하고, 남들이 하지 않은 고민을 먼저 해야 한다고 봤다. 이무원 연세대 교수는 지난해 낸 사례연구 집에서 "현대차그룹에게 추격자 자세는 회사 초기 성공과정에서 중요한 원동력이었다"면서 "정의선 회장은 그룹의 핵심목표를 추격자에서 시장의 법칙까지 조정할 수 있는 ‘게임체인저’로 도약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그룹 회장이 된 후 정의선 회장이 가장 먼저 한 일 가운데 하나가 본인 직속으로 판교에 선행기술원을 꾸린 일이다. 2021년 초 출범 당시 30, 40명 정도이던 조직은 현재는 150여명으로 늘었다. 내년까지 300명 정도로 더 키울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이 실제 차를 만들 때 필요한 기술을 가다듬는 연구개발의 산실이 남양연구소, 로봇·UAM 등 각종 신사업을 위한 브레인이 의왕연구소라면 선행기술원은 그보다 앞선 단계에서 조사하고 연구하는 역할을 한다.

현대차 제로원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한 모빌테크 관계자가 실감형 디지털 트윈 기술을 시연하는 모습


전공이나 분야별로 조직이 나뉜 게 아니라 프로젝트 단위로 팀을 꾸리기에 수시로 헤쳐모인다. 최근 공개한 자가치유 고분자 코팅, 투명 태양전지, 압력 감응형 소재 등 일련의 나노 소재 기술도 차세대 전동화 차량에 적용을 염두에 두고 개발 중인 선행기술이다. 박건혁 현대차 책임연구원은 "미래 기술이 어떻게 흘러갈지, 미래 사회엔 무엇이 필요할지 가늠할 만한 수준보다 한발 더 나아간 차원에서 조사를 시작한다"며 "내부 연구조직에서 프로젝트를 정하기도 하지만 입차 1~2년차 신입직원까지 참여한 위원회를 통해 프로젝트 진행 여부를 결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내부에 선행기술원이 있다면 외부 아이디어 꾸러미는 제로원이 쟁인다. 공학도(엔지니어)라기보단 창작자(크리에이터)가 더 어울릴 법한 조직을 지향한다. 외부 초기기업과 협업하는 터라 대학생은 물론 각계 전문가와 함께 매해 공모에 참여한다고 한다. 노승규 현대차그룹 팀장은 "모두를 위한 이동수단을 구현하기 위한 일환으로 특정분야 제한을 두지 않고 공모를 한다"며 "아주 황당한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는데 그런 것을 서로 잘 연결시키고 가다듬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1위 수소車, 상용·고성능차도 주도권


미래 궁극적 친환경차로 꼽히는 수소 기반 동력체계는 개발·양산 단계에서 이미 전 세계 완성차업체 가운데 한발 앞선다는 평을 듣는다. 스포츠유틸리티차(SUV)나 대형트럭·버스 등 최초 양산기록을 가진 것은 물론 글로벌 점유율도 수년째 1위다. 이는 일부 메이커를 제외하고 아직 다른 경쟁자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도요타·혼다·BMW 등 다른 메이커에서도 잇따라 수소차를 내놓거나 개발 중이라는 점을 공언하면서 현대차를 뒤쫓고 있다. 도요타는 미국서 주로 파는 SUV 랜드크루저를 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와 함께 수소연료전지 모델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그룹은 앞서 1998년 수소 활용 기술개발을 시작, 2000년대 초반부터 수소연료전지 기반 모델을 잇달아 내놨다. 개발 초기 값비싼 연료전지시스템은 꾸준히 낮아져 차세대 제품은 기존 대비 98% 이상 낮추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유럽 상용차 메이커에 수소연료전지를 공급하는가 하면 중국 광저우에 연료전지 공장을 올해부터 가동하기 시작했다. 미국서도 올해부터 수소 트럭을 판매키로 했다. 선박·항공·발전 등 자동차 이외 분야와 협업도 늘려나가고 있다.

현대차 N Vision 74


고성능 전동화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움직이는 연구실’이라는 뜻의 롤링랩 N비전74를 비롯해 RN22e에는 고성능 전동화 차량에 들어가는 각종 첨단기술이 집약돼 있다. 내달 출시를 앞둔 현대차의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5N의 열관리 시스템, 사운드 시스템 등이 이러한 연구에 대한 성과물이다. 그간 다른 메이커에선 충분히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양산하지 못하는 기술들이다. 고성능 수소차는 현대차그룹을 제외하고 아직 시제품 형태로조차 내놓은 업체가 없다.

전동화·자율주행, 소프트웨어 등 미래 이동 수단을 둘러싸고 업체 간 경쟁하는 분야가 대폭 늘어난 만큼, 녹록지 않은 경영환경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과거 현대차 연구개발본부장을 지낸 이현순 두산그룹 고문은 "전반적인 연구개발 콘셉트야 현대차그룹이 쥐고 갈 수는 있겠지만 각 분야별, 부문별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모두 (현대차그룹이) 쥐고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전장 등 각 부문별 경쟁력을 갖춘 국내 기업이 여럿 있는 만큼 연합전선(얼라이언스)을 구축하거나 외부기술 습득에 유리한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플랫폼을 보다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