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실적현황
계열 금융사는 ‘회장님 금고’ 고객 돈으로 경영권 방어-③ 산업자본의 금융 지배
| 운영자 | 조회수 1,603

계열 금융사는 ‘회장님 금고’ 고객 돈으로 경영권 방어



관련기사

지분처분 강제 "계열분리 청구제"가 해법
① 족벌·세습 경영
② 계열사간 부당지원





③ 산업자본의 금융 지배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닥치기 직전인 97년 4월 말' 공정거래위원회가 집계한 10대 대기업집단의 총수 지분은 평균 1.7%였다. 공교롭게도 딱 5년 뒤인 2002년 4월 말 현재 자산순위 12대 기업집단의 총수 지분 역시 1.7%이다. 특수관계인과 계열사 지분까지 포함한 내부지분율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 48.3%에서 45.6%로 약간 낮아졌을 뿐이다.

외환위기 이후 재벌개혁을 했다지만 총수 1인이 자기 돈은 얼마 넣지 않고도 수십 개의 계열기업을 지배하는 재벌체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셈이다. 오히려 재벌체제는 더 튼튼해졌다고 보는 게 맞다. 계열 금융회사가 관리하고 있는 남의 돈까지 총수의 황제지배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 문어발식 지배를 가능하게 한 또 하나의 지렛대는 금융계열사=재벌 총수가 불과 1% 남짓의 지분으로도 황제식 경영지배력 유지하는 고전적 방식은 계열사 간 순환출자이다. 이는 왼쪽 주머니돈을 오른쪽 주머니로 옮겨 전체 지배자본을 키우는 방식이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남의 돈을 자기 주머니로 가져오는 방법도 생겼다. 정부가 규제완화라는 명분으로' 공정거래법' 증권투자신탁업법 등을 고쳐 재벌그룹의 금융회사가 보유하는 계열사 주식지분에 대해서도 의결권을 인정해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재벌계열 금융회사들은 ‘투자목적"이라며 고객돈으로 사들인 계열사 주식까지 총수의 경영권 방어에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삼성그룹의 소유·지배구조를 보면' 이게 얼마나 큰 혜택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삼성의 주력기업인 삼성전자에서 이건희 회장 개인(1.83%)과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7.38%에 불과하다. 그러나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이 보통주 전체의 6.9%이다. 여기에 시티은행이 보유한 우호적 지분 9.9%까지 합하면' 이 회장 뜻대로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이 24.18%로 늘어난다. 보통 주주총회에서 참석해 의결권이 행사되는 지분이 총발행주식의 60%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경영지배력은 안정적인 셈이다.

철강과 보험을 주력업종으로 삼고 있는 동부그룹도 금융회사에 대한 의결권 제한 완화조처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동부그룹 계열사들이 지난해 7월부터 아남반도체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동부그룹은 현재 아남반도체의 대주주가 돼있다. 여기에 동부화재가 500억원' 동부생명이 100억원씩 출자했다. 이에 따라 동부그룹은 철강과 보험에다 반도체를 새로운 주력업종으로 갖게됐다. 동부그룹은 계열 금융회사가 투자한 계열사 주식을 경영세습의 발판으로도 삼을 수 있게 됐다. 김준기 동부 회장의 외아들 김남호(28)씨가 금융부문 지주회사격인 동부화재의 최대주주(14.06%)이기 때문이다.

■ 황제적 지배의 비용은 사회가 부담=금융회사 자산은 대부분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나 예금자' 보험계약사들로부터 받은 돈이다. 그래서 금융회사에는 무엇보다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가 중요하다. 이런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국가경제에 타격을 주고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정부가 97년 11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총 155조원의 공적자금을 부실 금융회사에 투입한 게 이를 단적으로 대변한다.

그러나 이런 뼈저린 경험을 재벌체제 개선으로 이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재벌의 금융 지배력' 특히 비은행 금융권에 대한 지배력은 더 높아지는 추세이다. 투신권에서 재벌계열 11개사의 시장점유율은 2002년 10월 말 현재 45.58%로' 99년 3월 말에 견줘 10.48%포인트나 높아졌다. 2002년 8월 말 현재 22개 전체 생명보험회사 총 자산 150조원 가운데 삼성생명의 자산은 68조로 전체의 45.3%에 이른다. 97년의 32.9%에서 수직상승한 것이다.

고려대 박경서 교수(경영학)는 “미국이나 유럽 등 금융 선진국에서는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를 제도적으로 차단하고 있다”며 재벌의 비은행금융회사 소유가 늘어나는 것을 크게 우려했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지분처분 강제 "계열분리 청구제"가 해법


■사금고화 막으려면
재벌이 금융을 지배하는 데서 오는 폐해를 막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주주나 채권자 감독기관 등 이해관계자들이 견제와 감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장규율적 방식과' 정부의 행정력과 감독권한으로 직접 소유·지배구조를 건드리는 방법이 있다.

오는 2월25일 정식 출범하는 노무현 정부는 후자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이미 ‘계열분리 청구제` 도입을 선언했다. 공정성과 건전성을 해치는 재벌계열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법적 강제력을 동원해서라도 지배주주의 지분을 처분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김상조 소장(한성대 교수)은 “재벌계열 금융회사의 경우 시장을 통한 견제와 균형 장치는 물론 감독기능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분명해졌다”면서 계열분리 청구제 도입을 환영했다.

문제는 현재 국회의 여야 의석비율이나 국회의원들의 성향으로 봐서 이 제도를 입법화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또 재벌계열 금융회사 가운데 주력인 보험사나 투신사의 경우 대부분 비상장기업이어서 현실적으로 제도 도입의 실효성이 없다는 점도 문제이다. 비상장기업의 경우 주식 값 산정이 안돼' 계열분리 청구를 해도 이를 실행하기 위한 매각이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상조 소장은 “입법화 이전단계에선 정부고시나' 인허가 기준' 감독규정 등으로 금융회사가 재벌의 사금고화하는 것을 최대한 막으면서 금융거래의 실태와 문제점을 투명하게 공개해 사회적 여론을 모으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부 관련 부처들도 뒤늦게 재벌의 금융지배 폐해를 심각하게 여기고 대응방안 마련해 부심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재벌 금융회사에 대한 계열분리 청구제 도입이 안될 경우 그 대안으로 계열사별로 금융회사 주식을 취득할 수 있는 한도를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도 별도 팀을 만들어 지난 99~2000년에 한시적으로 시행해온 재벌계열 금융회사에 대한 연계검사제도의 부활 등 여러가지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다.

박순빈 sb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