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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임금인상 협력사가 떠안는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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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매일경제 날 짜 2003.12.22

대기업 임금인상 협력사가 떠안는꼴

◆거세지는 단가인하 압력 … 부품업체 생존위협◆

대기업과 거래하는 협력업체들은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 요구로 갈수록 어려운 처지에 빠져들고 있다.

원청업체인 대기업들은 한결같이 협력(납품)업체와 공정하고 투명하게 거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공개ㆍ공정 입찰을 실시하고 납품 가격도 협력업체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확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납품업체들 얘기는 다르다. 겉으로 보면 공정해 보일지 모르지만 원청기업 횡포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 납품가 합의 결정 말뿐=자동차업계의 납품 가격 결정 과정을 보면 이를 잘알 수 있다. 완성차업체 구매 담당자는 신차종 개발 단계에서 협력업체에 전화를 걸어 단가인하(CR)의 필요성을 전달한다. 그 후 협력업체 실무자를 불러 기존 납품가 대비 2~5% 단가 인하를 요구한다.

협력업체는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만 거래 중단을 각오하지 않는 한인하요구 자체를 거부하기는 힘들다. 만약 원가절감에 동의하지 않으면 "신차입찰제한"이나 "납품업체 변경" 등 각종 불이익이 돌아온다.

결국 완성차업체의 의견이 80~90% 반영돼 납품가 인하가 결정되고 이는 표준화와 공정 효율화 등 생산성 향상에 따른 원가절감이라는 이름으로 둔갑돼 문서로 작성된다. 겉으로 보면 공정성과 투명성이 실천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원청업체가 주도해 납품 가격이 결정된다.

부품업체 관계자는 "완성차업체들은 협력업체와 협의해 공정하고 합리적으로납품가를 결정한다고 주장하지만 속 내용을 보면 말뿐이고 협력업체 입장에서보면 일방적으로 단가 인하를 요구받고 있는 꼴"이라고 털어 놓았다.

◆ 비현실적인 원가 표준=원청업체가 제시하는 "원가 표준"이라는 것이 협력업체의 수익과 신기술 투자 여력 확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결정되는 것도 중소 하청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예컨대 일부 완성차업체는"5스타"라는 표준 등급을 설정하고 협력업체 제품을평가한다. 이는 각 부품의 품질과 가격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등급을 매기고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입찰에서 탈락시켜 자동차의 품질을 올리겠다는 취지로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부품업체들은 이 제도로 적지 않은 압박을 받고 있다. 특히 완성차업체의 표준화팀이 요구하는 원가절감 수준이 원자재 가격이나 인건비 상승 등 하청기업의 현실을 거의 반영하지 않고 있어 부품업체들은 수익을 내기가 매우힘들다.

부품업계에서는 완제품의 판매 급증으로 매출이 늘면서도 순이익 증가 폭은 오히려 감소하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용 생산하는 삼성코닝정밀유리는 2001년 매출 3046억원에 순익 1365억원' 지난해 매출 4168억원에 순익 1869억원을 냈다. 매출액의 절반가량 순익을 낸 셈이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매출 6900억원을 예상하면서도 순익은 고작 2500억원에 불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원인은 물론 납품 단가를 대폭 낮춘 데 기인한다.

한 PDP모듈 생산기업 관계자는 "400만원짜리 PDPTV를 만들기 위한 모듈을 100만원에 납품한다"면서 "PDPTV 호황이 와도 모듈 가격은 거의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냈다.

◆ 대기업 인건비 부담 협력업체 전가=경기도 광주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D사는 90년대 중반 이후 임금을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 회사 근로자들 평균 연봉은 2000만~3000만원 수준. 현대ㆍ기아 등 완성차업체 생산직근로자는 평균 연봉이 4000만원을 훌쩍 넘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올해 발표한 기업 규모간 임금격차 자료에 따르면 99년 1.7배였던 대기업 임금과 영세기업 임금수준 격차는 1.9배로 확대됐다. 기업 규모별 임금 격차가 커지는 이유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비해 2.8배나 많은 상여금과 성과급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들은 노조의 힘에 밀려 매년 상여금과 성과급을 올려주고 있다.

이런 현실은 대기업과 협력업체 직원들의 교육과 복지 등 전반적인 생활 수준의 격차를 더욱 벌리면서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 문제를 확대 재생산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 협력업체 투자 감소로 산업 경쟁력 약화=대기업들의 지나친 원가 절감 요구는 중소 협력업체들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적정한 이익을 내지 못하면기본적인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기반 기술이취약해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중ㆍ장기적으로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약화시키면서 첨단 기술의 대외 의존도가 커지는 등 대기업에도 나쁜 영향을줄 수 있다.

최근 들어 자동차업계에서 중견 부품업체들이 외국 업체에 잇따라 매각되거나외국 지분을 끌어들이고 있는 추세가 가속화하고 있는 것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는 부품업체들이 수익 구조가 취약해 기술 경쟁력이 뒤떨어지고 자금 여력이 없어지면서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다.

부품업체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완제품의 판매 증가로 호황을 누리면서 직원들에게 많은 보너스를 줄 때 국내 부품업체들은 원가절감 요구로 더욱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부품업체의 R&D 투자 부족과 자금 악화로 산업 기반 전체가 기형적으로 흘러가면서 부메랑처럼 대기업에 부담을 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