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산업자료
"전기차는 늘어나는데"... 문턱 높은 규제에 주유소→충전소 전환 '잰걸음'
| 관리자 | 조회수 808

전기차 13만여대 충전소 확충 문제 시급
에너지 업계, 전기·수소 충전업 걸음마 단계
2040년 8529곳 퇴출해야 “정책지원 절실”

전기자동차 보급이 늘어나면서 충전소 설비 확충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개정되지 않는 규제로 인해 주유 업계에선 제도 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태다./ 게티이미지뱅크
전기자동차 보급이 늘어나면서 충전소 설비 확충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개정되지 않는 규제로 인해 주유 업계에선 제도 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태다./ 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가 올해 6월 기준 13만여대에 달하면서, 충전소 확충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탈석유화'를 준비하는 정유업계는 일찌감치 기존 주유소를 전기·수소차 충전소로 전환하는 작업에 돌입했지만, 이미 화석이 되어버린 법안과 규제로 인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유사들은 기존 주유소를 거점 삼아 전기·수소차 충전, 드론 택배 등 다양한 '차세대 비즈니스' 확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주유소가 '친환경 에너지 허브'로 발전하기 위해선 충전설비 설치에 대한 '거리문제'와 정부 지원책 확충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전기·수소차 시대 도래했지만, 높아지는 '규제 완화' 목소리

현행법상 기존 '주유소' 내에 전기차 충전 설비를 새로 설치하려면, 주유소 설비에서 최소 1m 이상 거리가 유지되야 한다. 여기에 충전 설비에 필요한 '분전반'은 6m거리에 위치해야 하고 전용 탱크 주입구 중심선에서 4m 거리 간격 유지 등 거리를 둬야 하는 문제가 있다. 전기차 충전에는 20~30분간 시간이 필요한데 충분한 공간을 보유한 주유소는 많지 않다보니,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고 싶어도 설치하지 못하는 때가 많다는 게 업계 하소연이다.

 

주유 업계 관계자는 "수익성 악화로 주유소가 매년 100개 이상 줄어드는 상황에서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새 먹거리 발굴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 전기차·수소차 충전기 등을 설치하려 해도 이격 거리 규제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전 시간에 따른 수익성 문제도 있다. 전기차 충전에 대한 순 수익이 1000원대에 머물면서, 굳이 충전설비를 세워 둬야 하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수소충전소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수소차 보급은 1만 2439대(3월 기준 점유율 33%)로 세계 1위다. 반면 충전기 1기당 차량대수는 180대로 미국(1기당 224대)에 이어 두번째로 충전인프라가 열악하다. 독일은 충전기 1기당 9대, 일본 38대, 중국 56대 등으로 수소차 보급 대비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낫다.

 

정부는 수소경제 가속을 위해 수소충전소를 73기에서 연말까지 180기 이상으로 늘린다. 이 중 수도권은 17기에서 50기 이상으로 확대한다. 무엇보다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대기업이 주유소나 가스충전소를 수소충전소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특히 서울은 땅값이 비싸 새로 수소충전소 짓기에 부담이 크기 때문에 기존 주유소와 충전소의 전환을 적극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창종 수소융합얼라이언스 실장은 "수소충전소 건설 기술개발, 국산화로 예전보다 가격이 낮아지고 있다"며 "LPG충전소도 초기엔 설비가 비쌌지만, 부품 대량생산 단계로 가면 경제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또 개별 수소충전소가 손익분기점을 넘으려면 수소차 하루 100대 이상 충전이 돼야 한다고 했다. 결국 수소충전소 건설 경제성이 높아지고, 수소차 보급이 확대되면 인프라 부족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는 기대다. 한편 수소충전소는 전기차 충전소보다 인프라가 크게 열악하다. 전기차는 국내 전체 보급차량 동시 충전 시 16.2시간(한국자동차산업협회 3월 기준)이 소요되지만, 수소차는 30시간 소요된다.

 

오는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중단 등으로 주유소는 줄줄이 폐업할 위기에 직면했다. 정유·주유소업계가 빠르게 변화하는 에너지 패러다임 속에서 석유에서 수소·전기충전으로 업종 전환에 성공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요구가 나온다.

 

충전소 전환 위한 정부 지원책 절실

정부가 오는 2030년까지 '탈내연기관'을 선언하면서 기존 주유소들은 벼랑 끝에 내몰렸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수송에너지 전환에 따라 주유소 1개소당 매출 손실이 2030년 약 3억 6800만원(손실률 9.5%), 2040년 약 12억 6500만원(손실률 31.9%)에 달할 전망이다. 만약 현 수준의 영업실적을 유지하려면 1만1000여 개의 주유소 중에서 2030년까지 2053개(18%), 2040년까지는 8529개(77%)가 퇴출되어야 한다.

 

국내 완성차 업계의 전기자동차에 대한 연구와 생산은 활발하지만, 정작 수소·전기 충전소 보급율은 유럽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최근 주요 에너지 기업들이 충전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환을 시작한 상태다.

 

독일의 경우 2030년까지 모든 주유소가 전기차 충전기 옵션을 제공할 수 있도록 100만개의 전기차 충전 포인트를 설치할 계획인데, 정부 차원에서 재정부담을 덜어주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국내는 아직 지원제도가 미비한 상황이다.

 

수소·전기충전소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선 기존 주유소 부지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접근성과 차량이 들어가기 좋은 동선을 확보한 최적의 입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현대오일뱅크, GS칼텍스, SK에너지, S-OIL(에쓰오일) 등 주유소업계에서 운영하는 수소충전소는 10군데도 되지 않는다. 현대오일뱅크의 자영주유소 5곳과 GS칼텍스의 강동수소충전소, SK에너지의 평택수소충전소 등이다. 전기차 충전기를 확보한 주유소도 많지 않다. GS칼텍스는 59개소에서 79기의 충전기를 운영 중이다. SK에너지는 이달까지 49개소 52기 충전기를 확보한다. 현대오일뱅크는 20개소에서 전기충전을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현대차와 테슬라 등 자동차회사들은 전기차 충전시장 선점을 위해 충전소를 직접 운영하며 브랜드화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 경쟁에서 밀리면 주유소업계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한 이유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충전기 설치비의 70~80% 지원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 지급 △관련 인건비 지원 등이 선결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영세사업자인 개별 주유소 사업자는 급격한 시장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나 공공부문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사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2015년 채택된 파리협정의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 원칙이 정부의 수송에너지전환 시 반드시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유소 사업자가 고용을 유지하고 사업을 영위하거나 다른 사업으로 전환할 때 정부·공공부문이 구체적인 지원을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추가로 최근, 태양광 패널이나 연료전지 발전 시스템 등을 설치하는 주유소도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통해 생산하는 전기를 다양하게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행법에 따르면 주유소 내 연료전지 발전 등으로 전기를 생산해도 이를 전기차 충전 등에 이용할 수 없다.

 

주유소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주유소가 기름만 팔았다면 이제는 직접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고 이를 친환경 모빌리티에 이용할 수 있는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게 새로운 판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주유소 내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에너지가 전기차 충전 등에 활용되면 경제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주유소 사업은 현재도 포화상태인데, 충전소 전환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 업주들이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는 처지”라며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물꼬를 터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